입력 : 2013.04.25 03:03
TV 없애고 책장·테이블로 독서 모드 조성
인터넷 할 시간에 블록 놀이로 창의력 '업'
전교생 모두 친구… "도시 학교보다 좋아요"
2013년 4월 25일 현재 최고 시청률 14.2%(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한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MBC), 그리고 캠핑의 인기에 힘입어 농촌이 '실외 체험학습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농촌 청소년은 열악한 교육 인프라 탓에 학업 성취도 면에서 뒤처지기 십상이다. 맛있는공부는 농촌 지역의 소규모 학교에 다니면서도 나름의 학습 노하우로 무장한 초·중학생 2인〈프로필 참조〉을 만났다. 전국 단위 대회에서도 당당히 기량을 뽐낸 이들이 전수하는 '농촌에서 공부로 살아남기' 비법을 정리했다.
◇공부? 상에 둘러 앉아 해야 제맛이죠!
박범식(세종 장기중 3년)군에겐 누나가 둘 있다. 박군의 둘도 없는 '절친'들이다. 박군의 집이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리는 조치원역에서 버스로 한 시간쯤 달리면 나오는 작은 마을이다. 구석기 유물 체험학습장으로 유명한 석장리박물관이 가깝다. "저희 집 거실엔 TV 대신 책장과 상(床)만 있어요. 누나들이 항상 앉아 공부하는 공간이죠. 어느 순간부터 심심해진 저도 누나들 곁에서 책을 꺼내 같이 읽게 되더라고요."
한데 어울려 공부하길 좋아하는 박군은 공부 계획도 느슨하게 세우는 편이다. 어떤 친구가 갑자기 같이 놀자 할지 모르고, 밖에서 뛰놀다 보면 컨디션도 들쑥날쑥하기 때문. 그는 "학습 계획은 문제집이나 교과서의 쪽수(권수) 단위로 탄력 있게 정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집은 다음 주까지 다 풀어야지' 하는 식으로 계획을 잡아요. 시간 단위로 빡빡하게 플래너를 쓰는 친구도 있는데 전 그걸 못 지키면 스스로 실망하게 되더라고요. 저처럼 기분파 성향이 있다면 융통성을 발휘하는 편이 효율적입니다."
용환승군이 재학 중인 경기 파주 적암초등학교 전교생은 53명이 전부다. 북한과 가까운 이 지역엔 군부대가 밀집해 있다. 밤이면 탱크 지나가는 소리에 잠을 깰 정도. 용군이 살고 있는 적암리엔 파주 평화통일 체험학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용군이 속한 6학년을 포함, 학년당 정원이 9명 안팎에 불과해 적암초등의 모든 수업은 토의·토론 형태로 진행된다. 책상을 긴 식탁 형태로 붙이고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장군면에서 나고 자란 박군과 달리 용군은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4학년 때 도시에서 이곳으로 전학 왔다. 그는 "처음엔 '이렇게 작은 학교도 있구나!' 싶어 놀랐지만 지금은 전교생 이름을 외울 수 있는 이곳이 도시 학교보다 훨씬 좋다"고 말했다. 수업 중 언제라도 모르는 건 묻고 답할 수 있는 적암초등의 수업 방식 역시 용군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실제로 그는 올해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전교 학생회장에 당선됐다.
◇'내 것'으로 만들려면 오감 학습 필수
전국중학생국토올림피아드 참가 당시 박군을 지도했던 최정숙(50) 장기중 교사는 "범식이는 전교 1등을 도맡는 인재지만 특히 과학 실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박군은 "지구과학을 잘하려면 하늘을 쳐다봐야 하고 생물 과목을 잘 이해하고 싶다면 들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풀이나 꽃, 별자리를 관찰하는 일에 매료됐어요. 당시 제겐 등·하교시간이 곧 과학 공부 시간이었죠. 자연스레 과학자란 꿈이 생기더라고요." 그는 "전교생 수(97명)가 적은 덕분에 1년에 스무 번 넘게 체험학습을 나갈 수 있는 점도 좋다"며 밝게 웃었다.
국제학생창의력올림피아드에선 20g이 채 안 되는 나무 구조물로 수백 ㎏짜리 바벨을 견디는 과제 등이 출제된다. 용군이 이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두 남동생과 매일 했던 '블록 놀이'였다. 그는 "(블록 놀이는) 인터넷이 잘 안 터져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것"이라며 "블록 구조물 사이에 못 쓰는 장난감을 섞기도 하고 우리끼리 새로운 놀이를 개발하며 창의력이 싹텄다"고 말했다.
용군의 담임교사인 강호용(32) 적암초등 교사는 농촌 학교의 최대 장점으로 '과거로의 회귀'를 꼽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물론 우리 삶에 필요하죠. 하지만 요즘 우리 아이들은 지나치게 거기에 빠져 있어요. 이곳 아이들은 최신 정보엔 느린 대신 인성과 경험을 차근차근 쌓고 있습니다. 액정화면 바깥에서 배울 수 있는 게 꽤 많거든요."